몸에 좋은 음식, 왜 자꾸 포장지만 화려해질까
제목: 몸에 좋은 음식, 왜 자꾸 포장지만 화려해질까

요즘 마트에서 식품을 고를 때면 포장지 앞면에 적힌 문구를 한참 들여다보게 된다. ‘저당’, ‘고단백’, ‘비건’, ‘글루텐프리’ 같은 단어가 유난히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건강을 챙기려는 마음이 커진 만큼, 소비자들은 이전보다 훨씬 꼼꼼하게 라벨을 읽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포장지가 화려해질수록 실제 내용물에 대한 확신은 오히려 줄어드는 느낌이다. 진열대 앞에 서면 비슷한 제품이 수십 가지인데, 앞면의 큼직한 문구만으로는 무엇이 진짜 나은 선택인지 판단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결국 남는 건 ‘뭔가 건강에 좋은 걸 샀다’는 막연한 안도감뿐이다.
얼마 전 직장 근처 편의점에서 단백질 음료를 사다가 한참 웃은 적이 있다. ‘단백질 20g’이라고 큼직하게 써 놓았는데, 뒷면 성분표를 보니 1회 제공량 기준이었다. 한 병을 다 마시면 그 정도라는 뜻이지, 한 모금에 20g이 들어 있다는 뜻은 아니었다. 물론 표시 자체가 거짓은 아니다. 다만 앞면의 큰 글씨와 뒷면의 작은 글씨 사이에 놓인 소비자의 해석 차이를 마케팅이 영리하게 활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이후로는 같은 제품이라도 ‘1회 제공량’과 ‘총 내용량’이 각각 얼마인지 먼저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숫자 하나 차이로 실제 섭취량이 두 배 가까이 달라지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런 현상의 배경에는 건강에 대한 사회적 관심 증가가 자리한다. 몇 년 전부터 ‘헬시 플레저’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졌다. 건강을 위해 무언가를 참기보다 즐기면서 챙기려는 태도다. 식품업계는 이 흐름을 놓치지 않았다. 기능성 원료를 넣거나 당·나트륨을 줄인 제품을 잇달아 내놓으면서, 앞면 표시 경쟁이 본격화됐다. 문제는 이 경쟁이 소비자의 이해를 돕기보다 구매 욕구를 자극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기 쉽다는 점이다. 실제로 같은 ‘저당’ 표기라도 어떤 제품은 당을 30% 줄였다고 강조하고, 어떤 제품은 원래 당이 거의 없는 카테고리에서 습관적으로 붙이는 경우도 있다. 기준이 제각각이니 소비자 입장에서는 비교 자체가 쉽지 않다.
여기에 하나 더 얹자면, 포장 디자인 자체가 하나의 심리 장치로 작동한다. 녹색 잎사귀, 깔끔한 흰 바탕, 굵은 산세리프 서체—이 조합만으로도 우리 뇌는 ‘건강하다’는 신호를 먼저 받아들인다. 영양학적으로는 별 차이가 없는 두 제품인데도 디자인이 다른 것만으로 한쪽이 더 ‘몸에 좋아 보이는’ 착시가 생긴다. 식품회사들이 마케팅 예산의 상당 부분을 패키지 디자인에 쏟아붓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결국 우리는 성분이 아니라 브랜드가 설계한 ‘건강한 느낌’을 사고 있는 셈이다.
식품표시광고법에 따르면 식품 등의 표시·광고는 소비자를 속이거나 오인하게 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오인’의 경계는 생각보다 모호하다. 큰 글씨로 강조한 영양 정보가 실제 섭취량과 다를 때, 이를 두고 과대광고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소비자가 느끼는 체감은 다르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최대한 눈에 띄게 만드는 기술이 발달한 셈이다. 법조문이 금지하는 것은 명백한 거짓·과장이지만, ‘진실을 유리하게 배치하는’ 행위까지 일일이 규제하기는 어렵다. 그래서일까.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표시는 결국 영업의 영역”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오간다.
최근에는 이런 표시를 둘러싼 논의가 한층 구체화되고 있다. 한국소비자원이 공개한 조사에 따르면, 소비자 상당수가 식품 앞면 표시만 보고 뒷면 성분표를 확인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특히 바쁜 직장인일수록 앞면의 큼직한 문구에 의존해 선택을 끝내기 쉽다. 나 역시 그런 소비자 중 하나였다. 시간에 쫓기면 뒷면까지 꼼꼼히 들여다볼 여유가 없다는 걸 잘 안다. 점심시간 10분 남짓한 편의점 쇼핑에서 성분표를 한 줄씩 읽는 사람은 드물다. 문제는 그 짧은 순간의 선택이 하루 세 끼, 한 달이면 아흔 번 가까이 쌓인다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기능성 표시를 불신할 필요는 없다. 실제로 당을 줄인 음료나 단백질을 보강한 간편식은 분명 이전보다 선택지가 넓어졌다. 문제는 소비자가 그 차이를 제대로 인지할 수 있느냐다. 성분표를 읽는 습관이 자리 잡히면 같은 제품군 안에서도 훨씬 합리적인 선택이 가능해진다. 나는 요즘 장을 볼 때 앞면 문구를 일부러 무시하고 뒷면부터 보는 연습을 한다. 처음엔 번거롭지만, 몇 번 하다 보면 숫자가 눈에 익는다. 나트륨은 1일 기준치 대비 몇 %, 당류는 몇 g인지 대략적인 감이 생기면, 앞면의 화려한 카피는 자연스럽게 배경으로 밀려난다. 심지어 같은 브랜드 안에서도 ‘프리미엄’ 라인과 ‘기본’ 라인의 성분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발견하게 되는데, 그때의 허탈함과 동시에 얻는 통제감이 꽤 쏠쏠하다.
전망은 그리 어둡지 않다. 정부와 소비자 단체가 앞면 표시 기준을 더 명확히 하자는 목소리를 내고 있고, 일부 기업은 자발적으로 표시 방식을 개선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예컨대 1회 제공량을 명확히 분리해 표기하거나, 앞면 강조 문구 옆에 총 내용량 기준 수치를 함께 병기하는 식이다. 규제가 아니라 신뢰를 파는 쪽이 결국 오래 간다는 걸 업계도 서서히 체감하는 분위기다. 무엇보다 소비자 스스로가 라벨을 읽는 힘을 기르는 것이 가장 확실한 대응이라는 생각이 든다. 화려한 포장지 뒤에 숨은 작은 글씨를 읽어내는 눈이 결국 시장을 바꾼다. 나 같은 직장인의 작은 습관 하나가 그 시작이 될 수 있지 않을까.